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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님의 대뷔시절에 대한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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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사모
작성일17-07-24 23:03 조회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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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구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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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그 끝나지 않을 전설

글 /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 전 략 ]


나훈아에 대해 주변에서는 ‘타고난 소리꾼’으로 평가하기에 주저함이 없다.
그와 서라벌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서양화가 이목일 화백은 ‘그 시절부터 이미 노래 하나는 끝내줬던 인물’로 기억한다.

“1학년 때 우이동 골짜기로 봄소풍을 갔었어요. 그때 홍기(나훈아의 본명)가 ‘이별의 부산 정거장’을 불렀는데 함께 소풍 왔던 이웃 동덕여고생들까지 환호성을 질러 골짜기가 온통 함성으로 뒤덮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결국 이후 가수로 데뷔한 이 자랑스러운 홍기를 위해 친구들이 너도나도 엽서를 사서 방송국에 신청곡을 보내던 기억이 새롭습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나훈아의 초창기 히트곡들인 ‘임 그리워’, ‘낙엽이 가는 길’의 작곡가 심형섭씨. 그는 나훈아의 데뷔를 직접 도와준 실질적인 인물이다.
그는 항간에 떠도는 나훈아의 데뷔시절의 일화들, 즉 ‘무명시절 상경해 오아시스레코드사 급사시절 우연히 한 가수가 펑크 낸 탓에 대신 노래를 취입, 일약 스타덤에 오른...’ 등의 ‘카더라 통신’은 전혀 사실무근이라 일축한다.

이렇듯 연예계에는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가 사실인 양 회자되는 경우가 많다며 그에 따른 연예인들의 심적 고통이 매우 클 수밖에 없을 것임을 전제한 뒤 나훈아 데뷔시절에 대해 상세히 전한다.

작곡가로 독립하기 이전 한동훈 작곡사무실에서 지도교사로 있었던 심형섭씨는 당시 책가방을 들고 찾아온 지망생 나훈아를 생생히 기억한다.
처음 ‘목포의 눈물’ 등을 구성지게 부르는 예사롭지 않은 가창력을 간파했던 그는 이후 미아리에 사무실 겸 음악학원을 차린 뒤 나훈아, 작사가 박진하와 셋이 함께 형 집에서 기거하며 데뷔곡인 ‘내 사랑’과 ‘약속했던 길’을 만들어 나훈아에게 취입시켰다.

‘처음 마이크 앞에 섰음에도 주눅 들지 않고 단 한 번 만에 오케이 사인을 받아냈을 만큼 실력을 입증해보였다’고 증언한다.

나훈아는 가요계에서 ‘의리의 사나이’로 통한다. 특히 초창기시절을 함께 했던 작사, 작곡가들과는 매년 연말에 반드시 한 차례씩 초대, 술자리를 가져왔다.
꾸준히 지속되어온 이 연례행사 역시 기자회견 이후 중단되었다. 이들이 함께 모여 지난 2005년에 제작한 음반이 ‘벗’이다. 나훈아의 가장 최근 음반이기도 하다.

[ 후 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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