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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효진의 인간탐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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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사모
작성일17-07-27 11:00 조회3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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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나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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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번 돈 모두 사회에 내놓겠다』


―디너 쇼 한 번 하면 1억이 들어온다면서요?


『아니, 그거 들어와선 안 되죠』

―어, 그럼 2∼3억 들어오나요?


『하하하, 그게 정해져 있는 건 아니죠』

―그러면, 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서, 羅勳兒씨가 최종적으로 하려고 하는 건 뭡니까?


『제가 얘기를 해드릴 테니 더 이상은 묻지 마십시오. 제 큰애(최유민, 고3)가 곧 대학에 들어가는데요, 내가 그랬어요. 「공부는 네가 원하는 대로 시켜주마. 공부가 끝난 다음에는 너한테는 1원도 못 준다. 왜냐? 이건 내 돈이다. 내 돈은 무슨 돈이냐? 사회에서 날 사랑해 준 사람들이 있기에 내가 번 돈이다. 이걸 전부 사회에 주고 죽을 거다」 그랬어요.

더 묻지는 마십시오. 지금도 사회에 고맙다는 생각으로 내가 할 일을 생각하고 있고 또 실제로 하고 있습니다. 더 묻진 마십시오. 이건 아무도 모르니까요』

羅勳兒 하면 떠오르는 게 있다. 허연 턱수염, 무릎이 찢어진 청바지, 짙은 눈썹.

―흰 수염도 기르고, 희끗희끗하게 센 앞머리를 꼭 염색한 것처럼 헤어스타일을 꾸미셨는데, 이게 다 패션인가요?


『스타로서 컨셉의 하납니다. 이러다가 어느 순간에 또 다른 모습으로 확 바꿉니다. 이게 우리가 늘 연구하고 노력해야 할 과젭니다. 보세요, 한 자리에 35년간 앉혀 놓고 차 한 가지만 먹어라 먹어라 하면 진저리가 날 거 아닙니까?』

―알았습니다. 나도 내일 머리를 삭 밀어버려야겠습니다. 그런데 아까 스캔들 말씀을 하셨는데, 金芝美씨하고 73년(나훈아씨가 26세 때)부터 81년(34세)까지 8년간 함께 계셨는데….

이 말이 나오자 그는 얼굴빛이 난처해지면서 『아아!』 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참 대답하기 곤란한 대목을 만난 것 같았다. 그러나 잠시 뒤 차분한 대답이 돌아왔다.


『저는 그때 그 여인하고 만나서 오늘 내가 여기에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羅勳兒가 金芝美 덕이다?


『아니 「덕」 하고는 의미가 좀 다르지요. 그때 참 저는 같이 있으면서 느끼는 게 참 많았습니다』

―어떤 걸?


『아, 내가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

―왜?


『저보다는 (金芝美씨가) 나이가 많기 때문에(일곱 살 年上) 첫째 아는 게 많았죠. 그래서 내가 더 많이 알고 인격적으로 나아져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요. 또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세월이 어떤 세월이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세월이었어요. 내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면 그 부분이 아주 별다른 세계 같아요. 좋고 나쁘고는 따질 수 없지만…』

『金芝美는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 준 女人』

―어떤 의미에서?


『어쩌면 그 세월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뻥 뚫린 세월이 아니었나 생각돼요』

―그 기간엔 노래도 안 했잖아요?


『정말로 중요한 건, 난 노래 부르는 걸 싫어한다는 겁니다. 노래하기 싫었어요. 다른 사람이 들으면 이해가 안 갈지 모르지만, 만약 제가 다시 태어난다면 저는 노래는 죽어도 안 부를랍니다』

―노래가 고맙잖아요. 羅勳兒를 우뚝 세워 놓고 5천만, 7천만 겨레가 다 사랑하고….


『그걸 내가 만족해야 하는데, 저는 이 직업이 싫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 속에서 빠져나와서 저를 볼 수가 있는 겁니다. 만약 제가 인기 속에 빠져 있으면요, 제 관리가 안 됩니다. 노래가 좋아서, 환장해서 노래를 하면, 그 속에 빠지고 마는 겁니다.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그때 노래가 싫어서 그만뒀나요?


『그때 당시는 「아아, 인제 노래는 싫어!」 이렇게 생각했지요』

―그럼 뭐하고 살려고 했습니까?


『나는 비즈니스가 좋았어요. 대전에서 「草原」이란 식당을 했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서 작업복 입고 뚝딱거리고 그랬어요. 난 그런 게 좋았어요. 내 스타일이 그래요』

―거기서 배운 건?


『비즈니스 마인드를 배웠죠. 저는 지금도 노래를 하고 있지만 유별나게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 분이 합치기 전까지, 물론 그 사이에 군대(공군)도 갔다 왔지만, 7년 가량 羅勳兒씨가 노래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었을 텐데, 그 돈 어떻게 했습니까.



『다 가지고 가서 함께 합쳤지요』

―우리는 그때 떠꺼머리 총각이 봉잡았다고 생각했거든요.



『전혀 잘못 생각하셨습니다. 제가 혹시 노망이 들어서 자서전을 쓴다면 이 얘기를 자세히 쓸 수가 있을 겁니다』

―지금 자서전을 한번 써 보시지.



『거짓말 안 할 자신이 없어서 못 씁니다.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참말을 해도 사람들이 「그래, 노망들렸으니까 한번 봐주지」 이럴 때 써도 쓰겠다는 겁니다』

―그럼 이제 이런 생활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습니까?


『8년 동안 거의 매일 우리 집 앞에 기자들이 망원렌즈를 들이대고 땡겨놓고 있었습니다. 둘이 도마 위에 올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는 것 자체가 옷을 잘못 입은 것처럼 힘들었습니다. 처음 2∼3년은 맞지 않는 옷도 불편을 못 느꼈습니다만, 사는 동안 결점도 보이고 그러니까 좋았던 것이 좋지 않은 것으로 바뀌기도 했고요.

이래저래 참 피곤했습니다. 다 지난 일인데도 노상 찍고 신문에 나고 그러니깐 아주 불편했습니다. 서로 눈에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가 세월과 함께 쌓여간 겁니다』

그런데도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 여인은 내 인생에 참 필요했던 여인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때까지 平坦大路를 걸어오던 내가 덜커덩 그 일이 있고부터 이것저것이 뒤죽박죽이 되고 또 모든 것이 힘들게 됐죠. 그런 걸 겪으면서 제가 어른이 된 겁니다. 그러니까 그 여인이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 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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