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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효진의 인간 탐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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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사모
작성일17-07-27 11:02 조회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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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나사모
<!--2013-04-15 --><!--//2013-04-15 --><!-- --><!-- 내용 출력 -->가수 안 됐으면 감방에 있을걸』


그러나 금지곡 결정도 羅勳兒의 수직 상승을 막지는 못했다.


『금지곡이 되니까 방송에 못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손 사장님이 바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을 낸 겁니다. 그랬더니 이게 또 굉장한 히트를 한 겁니다. 그러고 나서 「물어 물어 찾아 왔소」(임 그리워)가 또 터졌지요! 「가지마오」가 터졌지요! 계속 터지니까 사장님이 돈을 주체하지 못할 지경이 됐어요』

―그러면 羅勳兒씨도 돈을 주체하지 못했겠네!


『돈이 얼맨지도 모르고 자꾸 받았는데, 친구들하고 다 써버렸지!』

―저런! 아버지는!


『내가 이렇게 뜨니까 오아시스 사장이 아버지한테 인사를 가자캐요. 내가 얘길 안 했더니 우리 집이 못사는 줄 알았는지 쌀 한 가마를 지프에 싣고 돈 50만원을 봉투에 넣어 갖고 부산으로 내려간 깁니다』

―羅勳兒씨도 이제 이만하면 됐다 싶은 생각이 들었겠죠.



『그렇지요! 그런데 우리 집에서 그만 난리가 난 깁니다』

―왜요?


『그때 우리가, 아버지가 외국에서 들어오신 줄 알고 갔어요. 그때가 여름입니다. 아버지가 하얀 모시옷을 입고 계셨어요. 들어가자마자 손 사장님하고 큰절을 했어요. 「왜 왔냐?」 그러셔서 손 사장님이 「사실은 (아드님이) 가수가 돼서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면서 50만원이 든 봉투를 드렸어요. 쌀은 운전기사가 밖에서 내려놨고. 그걸 보고 아버지가 「돈 집어넣어라, 쌀도 도로 가져가라」 하시면서 난리를 쳐서 손 사장님이 그냥 다 가지고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나는 그 길로 병원으로 가고』

―아니 어디 맞았습니까?


『혈색이 안 좋다고 해서 아버지 친구분이 경영하는 병원에 저를 집어넣었는데, 사실은 서울 가서 그 짓 못 하게 하느라고 그러셨지요.


그런데 입원하길 참 잘했어요. 가서 보니 폐가 안 좋았어요. 그래서 그때 치료를 받아서 다 나았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저를 용서하지 않으셨어요. 얼마나 고집이 세셨던지…』

―지금도 가슴에 맺혔겠군요.



『그럼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1년에 몇 번씩 경기도 이천에 있는 아버지 산소에 가서 푹 울고 옵니다』

―아버지 말씀 안 들은 게 후회됩니까?


『안타깝죠. 지금도 공부를 더 했더라면, 하는 생각은 합니다』

―그런데, 그때 羅勳兒씨가 가수가 돼서, 그야말로 前途(전도)가 洋洋(양양)하게 잘 나갔지만, 만약 가수가 안 됐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죄송합니다. 틀림없이 깡패가 돼서 감방에 드가(들어가) 앉아 있을 깁니다. 제 친구들도 그런 얘기를 해요. 건달들 마지막 가는 곳이 거기 아입니까? 틀림없을 깁니다』

―그런 소질은 좀 있으셨던가요?


『제가 경찰서에 폭력으로만 일곱 번 드갔다 나왔으니까요. 상대가 전부 깡패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나온 깁니다. 일반 시민을 때렸다든가, 내보다 약한 사람을 때렸다면 그냥은 못 나왔겠지요』

―그래 그런 사람들하고 싸워서 이깁니까?


『제가 상당히 빠릅니다. 그리고 좀 셉니다』

시민회관서 공연중 怪漢과 격투

―인기인이 웬만하면 참아야지 왜 싸웁니까?


『연예인들한테는 건달들이 달라붙습니다. 내가 공연하는데 건달이 와서 괜히 객석에 앉아 있는 여자들 젖가슴을 만지면서 상소리를 합니다. 그러면 객석에서 「와, 와!」 해쌓고 난리가 푸썩 납니다. 그럼 공연이 되겠습니까? 그때 참아야 하는데, 저는 그걸 못 참고 「야, 니 이리 와!」 해서 불러다 놓고 한 방 멕이는 겁니다』

―왼쪽 뺨 위에 있는 그 상처(5cm쯤)가 공연하다 사이다 병에 찍혀서 다친 거라죠?


『그때가 72년 6월이었어요. 시민회관에서 공연을 하는데, 누가(金OO·당시 29세) 올라와요. 전 누가 악수하러 올라온 줄 알았습니다. 멋도 모르고 손을 내미는데 그냥 사이다 병 깨진 게 들어오는 겁니다. 그 사람은 노래를 못하게 제 목을 찌를라구 했대요. 그때 목을 찔렸으면 죽었지요. 얼른 피해서 뺨 위에 찍힌 겁니다. 그런데도 계속 사이다 병이 들어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하고 무대에서 8분을 싸웠습니다』

―그 난리가 났는데 사람들이 구경만 하고 있었나요?


『밑에서는 이걸 쇼로 알고 구경을 한 겁니다. 그땐 「다치마와리」(난투)라고 무대에서 싸우는 연기를 하고 그랬거든요. 박노식씨 같은 분이 그런 연기를 잘했죠. 이게 그런 건 줄 알았던 겁니다. 臨席 경찰도 그런 걸로 알고 보고만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치고 받고 하다가 보니까 위치가 바뀌어서 내가 피 흘리는 게 보였고, 또 피가 객석으로 팍팍 튀니까 관객들이 막 울고 난리가 났죠. 그러자 내가 그 사람 무릎을 꿇렸고, 경찰이 올라왔죠. 그래서 그 사람을 잡았죠』

―그때 南珍씨가 시킨 거다, 아니다 해서 말썽이 많았는데….



『남진씨가 시킨 건 아니었어요. 후에 남진씨가 얘기를 했는데, 그 사람이 좀 모자란 사람이었는데 자기를 찾아와서 「나훈아를 죽이겠다」며 횡설수설 하면서 귀찮게 하더래요. 그래서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데리고 나가 보내면서 5만원을 줬대요. 그러니까 이 모자란 사람이 「아, 이거 죽이라는 거구나」 하고 생각한 것 같아요』

―남진씨와 라이벌로 한국 가요계를 양분하다시피한 기간이 있었지요.



『그때가 참 황금시대였지요. 대한민국의 가요역사상 그런 때가 다시 오기가 어려울 겁니다. 경쟁도 했지만 相扶相助(상부상조)하기도 했지요. 인기를 얻는 데 서로 도움이 됐어요.

모든 면에서 그렇게 라이벌이 될 만한 상대를 서로 만나기가 힘들었죠. 고향도 호남(남진) 대 영남(나훈아)이었고, 생긴 것도 한쪽(남진)은 아주 잘생겼고 이쪽(나훈아)은 소도둑 같고, 노래하는 스타일도 저쪽은 엘비스 프레스리처럼 막 춤추면서 하고. 이쪽은 거의 서서 하고…. 그 당시에 또 金泳三씨와 金大中씨가 영·호남으로 서로 라이벌이고. 그래서 정치는 누구와 누구, 노래는 누구와 누구, 이랬죠』

『나를 부르려면 1억을 내야 한다』

―개인적으로 南珍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만한 가수가 만들어지기가 쉬운 게 아닙니다. 노래 잘하면 얼굴이 좀 그렇거나 키가 작거나 그렇죠. 다 갖추기가 참 어렵죠. 그런데 남진씨는 다 갖췄어요. 거기에다가 저보다 훨씬 더 연예인에 맞는 성격까지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요즘 南珍씨는 왜 조용할까요?


『아마 관리 때문이겠지요』

―관리는 어떻게 하는 게 잘 하는 겁니까?


『별(스타)은 별이어야 합니다. 별은 구름이 조금만 끼어도 안 보여야 합니다.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별은 별이 아닙니다. 별은 하늘에서 반짝반짝 스스로 빛나야 합니다. 빛날려면 항상 닦아야 합니다.

내가 저 동네 아저씨 같다면 사람들이 돈 주고 시간 버려 가면서 왜 보러 옵니까. 공짜표 줘도 안 올 겁니다. 참 TV에도 잘 안 보이고, 볼락캐도 방법이 없고, 보고는 싶은데…, 이럴 때 사람들이 보러 오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스탑니다. 우리는 꿈을 파는 사람들입니다』

―무절제하게 오라는 대로 다 가면 안 되겠군요.



『그렇죠! 내가 가야 할 자리를 골라서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누가 말해도 설 자리가 아니면 절대 안 섭니다』

―그러면 너무 비싸게 군다고 안 할까요?


『욕을 먹어야지요. 미국서 제가 신문을 보니까, 일반대중 가운데 30%는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야 슈퍼스타가 된답니다. 너나 나나 다 좋아하는 사람은 슈퍼스타가 아니라 그냥 스타라는 겁니다. 싫어하는 사람 30%가 있어야 좋아하는 사람들이 미칠 정도로 좋아한다는 겁니다. 저는 욕을 많이 먹습니다. 방송사에서 제일 많이 욕먹는 사람이 바로 접니다. 출연 교섭 한번 할래도 「더러워서 죽겠다」고 그래요.

우리 가수 가운데 학벌 좋고 공부 잘하고 노래 잘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런 분이 쇼하면 손님 안 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아주 점잖고, 교양 있는 말만 하고, 그러니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교수 같잖아요. 그러니까 안 가는 겁니다.

뭔지 모르지만 스캔들도 있고, 뭔가 좀 삐딱하게 굴기도 하고, 뭐 하나 할락카면 정신없이 난릴 직여 뿔고, 그러니까, 도대체 저게 뭐야, 한번 가보자, 이런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혹시 돈 많이 안 줘서 안 온다는 소리는 안 듣습니까?


『돈 많이 안 주면 안 갑니다. 그기 당연한 거 아니에요. 누가 대한민국에서 젤 비싸냐? 제가 젤 비쌉니다. 제가 2등의 열 곱은 더 받습니다』

―방송사에 모시려면 한 1억은 내야 합니까?


『방송사에선 가수들한테 출연료를 10만∼20만원밖에 안 줍니다. 그건 뭐냐? 내가 출연시켜 주니까 너희들 홍보가 되지 않느냐 이겁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는 안 합니다. 저를 출연시킬려면 적어도 2천만원 이상을 내야 돼요. 큰 프로그램에 나갈 때는 물론 1억이 넘어야지요』

―그러고 보니 오늘 이 인터뷰도 돈으로 따지면 수천만원 나가겠는데요.



『예, 인터뷰도 그렇습니다. 저와 인터뷰하기가 쉬운지 한번 물어 보십시오. 보세요, 이렇게 어려우니까 月刊朝鮮에서 吳 선생님 같은 분이 오신 겁니다. 그건 제가 만들어야 합니다.

제 공연을 보고 나서도 사람들이 만족을 하고, 밖에 나가서 자랑을 하게 해야 합니다. 관객들은 최고로 비싼 (보통 15만원) 입장료를 내고 왔지만, 내가 또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 주거든요. 그러면 사람들이 내가 최고의 입장료를 내고 최고의 무대를 보고 왔다고 자랑을 하게 되는 겁니다. 가수는 이렇게 자랑거리를 만들어 줘야 합니다』

―96년에 있었던 「KBS 설날 특집 나훈아 빅쇼」에선 다이아몬드 550개가 박힌 10억짜리 의상을 입고 등장하셨는데, 너무 호화롭지 않았나요?


『이건 꿈이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짓을 해야 합니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자랑을 해야 합니다. 「야, 나훈아가 다이아몬드가 주렁주렁 달린 옷을 입고 나왔어. 너 그거 봤냐? 야, 대단하더라!」 이렇게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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