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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효진의 인간탐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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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사모
작성일17-07-27 11:06 조회4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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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나사모
<!--2013-04-15 --><!--//2013-04-15 --><!-- --><!-- 내용 출력 -->『나는 노래를 못하니까 열심히 한다』


羅勳兒씨(본명 崔弘基·54)의 별명이 「트로트의 황제」라는 얘기를 여러 차례 들어와서, 내 생각엔 그가 어디에선가 꼭 황제처럼 차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있는 작고 그저그런 3층 빌딩의 꼭대기 사무실에 보통사람의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빨간 티셔츠만 아니었다면, 그저 눈이 크고, 눈썹이 짙고, 턱수염이 희게 센, 좀 별난 보통사람일 뿐, 연예인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사무실엔 흰색 피아노가 한 대 놓여 있었다. 또 그의 책상 옆엔 기타가 대여섯 개가 세워져 있었다. 그런 것들이 그가 음악 하는 사람임을 새삼 일깨워줬다. 그러나 그의 방은 꼭 IT 회사의 CEO 사무실처럼 꾸며져 있었다. 사실 그는 연예인이 아닌 음반 업계에서는 「崔회장」으로 통한다고 한다. 그곳이 그의 사업을 총괄하는 我羅企劃 회장실이었다.

커튼이 쳐있지 않은, 밝고 큰 유리창으로 오후의 햇살이 한 무더기 쏟아져 들어와서, 그의 상반신에 멋진 하이라이트를 만들어 놨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무슨 얘깃거리가 됩니까?』

―되고도 남지요. 아주 특별한 분 아닙니까?

그는 이 말에 곧바로 반격했다.



『아닙니다. 저는 절대로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아주 보통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여기서부터 얘기는 술술 풀려나갔다.



『지방에 공연을 가면 가수들이 거의 연습을 하지 않는답니다. 저는 밴드가 거의 초죽음이 되도록 연습을 합니다. 그러면 밴드들이 「다른 가수들은 악보만 갖다주고 그냥 무대에 올라갑니다. 그럼 그냥 하는데예」 그래요. 그럼 나는 이럽니다. 「이 사람들아, 그런 가수들은 노래를 잘해서 그래도 되지만, 나는 노래를 못하니까 연습을 해야지!」 그러면 아무 소리도 못해요. 이렇게 하는 것이 보통 사람이 하는 겁니다. 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래서 羅勳兒씨가 여기까지 왔다 싶었다. 그래도 좀 어깃장을 놔 봤다.

―사실 그 말도 맞네요, 밤낮 하는 일이니까. 그 사람들은 눈감고도 할 텐데요 뭘!


『악보만 읽고 멜로디를 연주하는 건 고등학교 밴드부도 할 수 있어요. 멜로디 뒤에 있는 걸 읽어야지 프로페셔널입니다. 진정으로 음악 하는 사람들은 멜로디 뒤에 있는 걸 읽고 연습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연습을 할 때, 「난 여기서 이렇게 부를 테니까 느그는 여기서 이렇게 해줘」 하고 맞춥니다』

―羅勳兒씨도 그렇게 노래 많이 했으면 더 연습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아니지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제가 35년간 노래를 하긴 했어도, 전에 노래한 건 정말 모르고 한 겁니다. 지금도 제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이제 막 알기 시작한 단곕니다』

나는 羅勳兒씨를 만나러 오면서도, 그가 성공에 도취한 건방진 연예인이면 어떻게 하나 하고, 적잖이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여기까지를 듣고 보니 오기를 잘했다 싶었다.

『名譽의 殿堂도 勳章도 싫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한번도 연습하지 않고 무대에 올라가는데 羅勳兒씨는 왜 그렇게 열심히 하십니까?


『그게 무서운 겁니다. 전 프로지 않습니까? 프로는 프로 값을 해야 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돈을 받고 노래합니다. 받은 값을 해야지요. 값은 그냥 안 나옵니다. 피나게 연습을 해야만 특별한 게 나옵니다.

우리는 우리 노래를 듣는 분들한테 감동을 줘야 합니다. 노래 한 곡이 대개 3분간 나가는데, 이 3분 안에 감동을 주려면 참말 대단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 감동을 주는 「나만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대답은 간단했다.



『연습입니다』

―그런데 거꾸로 이런 면도 있습니다. 羅勳兒씨가 너무 연습을 많이 해서, 감정적으로, 또 기교에 있어서 완벽하기 때문에, 아마추어인 우리 같은 사람은 따라 부를 수가 없어요.


『너무 잘 하시면 안 되지요. 그러면 저하고 자리를 바꿔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큰일 나지요』

우리는 하하 소리내어 크게 웃었다.


나는 그 날(12월6일) 새벽 MBC TV에서 본 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는 그 프로그램에서 명예의 전당(가수 부문)에 올라갔던 것이다.

―내가 듣기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걸 스스로 반대했다던데요.



『그렇죠, 그 자리에 앉아 있는데 식은 땀이 났어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처럼 그렇게 거북할 수가 없었어요』

―무엇 땜에?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그런 자리는 저희 선배들께 드려야 할 자립니다. 금년의 인기 가수를 뽑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그런 거 안 받겠다고 했지요』

―그런데 왜 나갔어요?


『MBC에서 미리 선전(예고)을 해놨어요. 그랬는데 내가 안 나가면 다른 사람들은 그 이유를 모를 거 아입니까. 그렇다고 기자회견 할 만한 일도 아니고』

―훈장도 언제 사양했다던데요.



『그런 거 얘기할 자리도 아인데…. 사실 한 두어 번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盧泰愚 대통령 때였는데요, 그것도 문제가 좀 있지요. 내가 받을 수 있을 때 같으면 받아도 괜찮지요』

―안 줘서 한인데, 주면 얼른 받지 뭘….



『아니죠. 찬물도 아래위가 있는데, 제 차례가 아니지요』

―그런 게 年功序列(연공서열)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 긴 세월을 몸을 바쳐 노래해 오신 분이 많은데, 눈에 보이는 부분만 가지고 얘기하면 안 되지요. 저는 지금 그런 거 받으면 안 됩니다. 그냥 나훈아 하는 것도 어려워요』

―그냥 나훈아란?


『그냥 노래하고, 힘들면 술도 한 잔 먹고, 실수도 하고…. 그런데 훈장 받으면 값을 해야 되지 않습니까? 받는 건 좋을 지 몰라도 그러고 나선 난 어떡하란 말입니까? 지금도 그런 거 생각하면 그냥 뒷골이 땡겨요. 우리 선배님들은 참 고생 많이 하신 분들입니다. 지금 젊은 가수들 히트 하나 하면 수십 억을 법니다. 우리 선배님들은 그렇게 히트 곡을 많이 가지고 계신데도 밥도 못 먹고, 제대로 잘 곳도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노래를 불러온 분들입니다. 그렇게 해 온 선배님들이 계셔서 오늘 우리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을 못 본 체하고 제가 훈장을 받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요? 말도 안 되지요!』

『뽕짝은 영원하다』

―오늘 새벽 MBC TV를 보니까 GOD와 함께 출연하셨던데, 요즘 젊은 사람들 노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단 이것도 한 유(類)의 노랩니다. 이걸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이건 나쁘다, 이렇게 평하면 안 됩니다. 유행가(流行歌)가 뭡니까? 흘러(流) 가는(行) 노래(歌)입니다. 흘러가는 노래 중에 이런 노래도 있는 겁니다』

―그러면, 요즘 젊은이들이 50∼60세쯤 됐을 때도 요즘 그런 노래를 부르며 좋아할까요?


『그렇지는 않겠지요. 제가 디너쇼를 하면 표(한 장에 보통 15만원)가 사흘 안에 다 팔립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아직도 뽕짝 이기(이게) 힘이 있는 깁니다. 뽕짝은 영원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도 회사에 들어가면 노래방 가서 무슨 노래 부르는지 아십니까? 뽕짝을 불러요. 젊은 사람들이 잠시 그런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나이 좀 묵고 그러면 「영영」, 「무시로」 이런 내 노래로 돌아오는 겁니다. 제가 오늘 이렇게 살아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뽕짝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뽕짝론은 계속됐다.



『우리 노래가 뽕짝일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젓가락을 사용하는 민족입니다. 우리는 밥 먹고 나서, 아니면 술 한잔 먹고 나서, 기분이 좋으면 젓가락을 두드리며 장단을 맞춥니다. 여기에 (실제로 손으로 장단을 치며) 가장 잘 어울리는 리듬이 뽕짝입니다. 밥도 먹었으니 배도 부르고, 술도 한잔 먹었으니 기분 좋죠. 그럼 장단 맞춰 흥얼거리며 노래를 하는 겁니다. 이기 바로 뽕짝입니다』

얘기가 미국으로 건너뛴다.



『미국에선 뽕짝이 나올 수가 없어요. 미국 사람들은 땅이 하도 넓어서 말을 타고 다니게 돼 있어요. 그래서 말 잔등 위에서 말발굽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릅니다. 떠그덕, 떠그덕, (노래부르며) 「아이 원어 고 홈」…. 이게 미국 뽕짝이에요.

반면 우리는 걸어다녔어요. 걸어다닐 때의 리듬이 또 바로 뽕짝이에요. (발바닥 장단을 치며) 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

그런데 지금 집은 없어도 차는 갖고 있는 시대가 됐어요. 그래서 우리 뽕짝도 달라지고 있어요. 조금 리듬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지금 자동차의 평균 속도가 시속 40km라면, 차를 달리면서 카세트를 들을 때, 그 속도에 어울리는 리듬이 돼야 합니다. 그러니까 조금 빨라지거나 아니면 그 리듬에 맞게 완전히 느려지거나…』

―요즘 랩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걸 우리 한국 문화라고 할 수는 없지요. 미국에서 건너온 거지요. 지금 후배들이 하고 있는 음악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봐요. 다만 한 가지, 대부분이 외국에서 온 젊은이들이 그런 음악을 하고 있어요. 우리 땅에서 태어나서 우리 된장국을 먹고 우리 정서 속에 살면서 이런 거 하면 더 좋겠지요. 그런데 외국서 살다 와서 말도 잘 못하는 젊은이들이 이런 노래를 불러서 지금 젊은이들의 음악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기 그기 좀 그래요』

―그런데 그게 젊은이들한테 잘 먹히고, 또 그게 동남아와 중국에 가서 韓流 열풍도 일으키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게 미국 거라서 그렇지요. 사실 우리 리듬이면 동남아에서 먹히기가 어렵지요』

―詩도 쓰신다면서요?


『아, 이건 詩라기보다는요, 메모 같은 겁니다. 제가 작곡을 하잖습니까? 곡에는 꼭 詩가 있어야 합니다. 좋은 詩는 그 속에 멜로디가 들어 있습니다. 작곡가가 곡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 그 詩 속에 있는 멜로디를 끄집어내는 거지요』

―어떤 때 메모를 합니까?


『저는 마음이 편하고 행복할 때는 생각이 안 나요. 몸과 마음이 힘들 때 별별 생각이 다 나지요. 행복했던 생각, 아팠던 생각…. 그러니까 전혀 생각지도 않은 글을 쓰게 됩니다. 지금도 제 차 속엔 기타가 있습니다. 또 책도 10권 이상 가지고 다니면서 봅니다.

밤에 부산서 공연이 끝나면, 그날로 밤에 자동차를 타고 올라옵니다. 공연이 끝나면 참 힘들지요. 그런데 차 타고 올라오면서 밖을 쳐다보면, 차창 밖이 그냥 詩입니다. 별도 있지요, 강이 흐르지요, 바람도 불지요, 저 산너머 추억도 있지요, 저 앞 먼 곳이 또 보이는 듯하죠…. 차창 밖에 아픈 추억도, 좋은 추억도 다 있어요. 그걸 주어 담는 거죠. 글로 막 쓰는 겁니다. 그리고 그 자리서 그냥 기타를 치면서 그 속에 빠지는 겁니다. 그럼 한 곡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두툼하고 작은 노트를 보여줬다. 나는 그 가운데 메모된 가사 하나를 보여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기타를 가져와 쳐 가면서 최근에 작사·작곡한 「空(공)」이란 노래까지 불러줬다.

그 가사는 「살다 보면 알게 돼 일러주지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 다 어리석다는 것을」로 시작됐다. 그의 인생철학이 가사 속에 잘 담겨져 있는 것 같았다. 곡은 조금 빨랐고, 창법은 나훈아 창법으로 사근사근 나가다가 꺾어져 넘어가고, 그러다가 또 힘차게 뻗어 나갔다. 히트예감이 들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 하는 「사랑」이란 노랜 작사·작곡 다 한 거지요?


『그렇지요, 그건 밤 3시쯤 자다가 일어나가지고 5분 만에 만들었어요. 그냥 막 詩와 곡이 나오는 때가 있습니다』

『李美子가 있어 행복하다』

―李美子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이구, 그런 분이 우리 대한민국에 뽕짝 가수로 계시다는 걸 생각하면 참 행복하죠. 그런 분들이 안 계시면 한국의 노래가 정리되지 않습니다. 여자가 부르는 뽕짝, 그건 그냥 李美子 스타일이라야 합니다. 남자가 부르는 뽕짝, 그건 그냥 羅勳兒 닮아야 합니다, 하하…. 뒤집고, 꺾고 해 쌓고, 전부 그래 가지 않습니까?』

―그럼 나훈아 이전엔?


『제가 나오기 전엔 뒤집고 꺾고 하는 게 없었습니다. (노래 부른다) 「거리는 부른다. 환희에 빛나는…」, 또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 보면 시들하고…」 이렇게 얌전하게 불렀지요. 저처럼 (노래) 「가지 마아오오 가지 마아오오…」 이렇게 꺾는 기 없었어요』

―허, 노래를 들으니 그 전과 아주 달라졌군요.



『그렇죠, 저부터가 큰 전환점이 됐지요』

―그런 羅勳兒 창법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전 어릴 때부터 민요를 좋아했습니다. 어머니가 제 손을 잡고 민요하는 데 자주 데리고 가셨거든요. 그때 그런 창법이 몸에 익숙해진 겁니다. 꺾는 창법이 민요에서 나온 겁니다. 보세요. (노래) 「아아리 아아리랑 스리 스으리랑…」 이런 것들이 다 꺾기 창법 아닙니까』

―요즘 현철·태진아·송대관 이 세 사람이 라이벌도 아니면서 라이벌처럼 하면서 트로트 부흥운동을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사람들도 인기가 있거든요. 인기는 그냥 얻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뽕짝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너무 앞서 가도 안 되고 한 발짝만 쓱쓱 앞서가야 합니다』

그의 뽕짝론은 계속됐다.



『뽕짝은 김치 같아요. 우린 김치 안 먹고 못 살아요. 뽕짝 없이도 못 살지요. 제가 일본 가선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 뽕짝은 김치다, 일본 뽕짝은 다꾸앙(단무지)이다」 그럼 사람들이 와 웃습니다.

대중가요가 우리 서민의 마음을 노래하는 것이기 때문에 간단하게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만, 노래라는 것은 기후, 인간성, 지역적 조건, 음식, 이런 것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런데 우리 뽕짝과 일본 뽕짝은 서로 닮아서 구별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우리 노래 속엔 일본과 다른 꼭 하나가 있습니다. 대륙 기질이 있습니다. 일본 노래엔 그게 없어요』

―羅勳兒씨 노래 가운데 어떤 게 대륙 기질인가요?


『(노래)「녹슬은 기이찻길아아아…」 하고 내뻗는데. 일본 노래엔 이런 게 없어요. 그냥 두리뭉실 넘어가지요. 일본 가수들은 한국에 와서 절대 히트 못 합니다. 간지러워요. 그 사람들의 음악의 흐름은 바다의 파도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수들은 일본에 가서 히트할 수 있군요.



『그것도 힘듭니다』

―김연자씨 있잖아요?


『김연자씨도 히트는 못 하고 있지요. 쇼 무대를 가지고 다니는 겁니다. 그럼 「돌아와요 부산항에」, 「가슴 아프게」는 왜 일본에서 불리느냐? 그건 여기서 히트한 게 건너간 겁니다. 일본 엔카(演歌)를 한국 가수가 불러서 히트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羅勳兒씨도 일본 가서 그런 거 시도하셨지요?


『했죠. 그러나 너무 힘들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대륙성 기질을 노래로 듣고 「와아, 잘한다!」 할 수는 있어도 가슴에 오는 건 아니거든요. 이걸 쉽게 알고 덤비면 큰 일 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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