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노래 연구

나훈아 노래 연구

歌聖 나훈아 感想 / 김삿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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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사모
작성일17-07-23 10:03 조회43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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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나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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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5 --><!--//2013-04-15 --><!-- --><!-- 내용 출력 -->최근 방송 언론 등에 많이 회자되고 있는 것 중에 “韓流”라는 단어가 있다.

이 한류의 실질적인 주역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분명 대중음악인이다.
 그러나 이 한류의 주역들이 처해 있는 현실적인 대우의 문제에 있어 그 내막을 살펴보면 특정인을 제외하곤 통상의 대중음악인들이 받는 개런티 중 TV출연료는 고작 10만∼30만원밖에 받지 못해 생계가 위협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십년 동안 다른 유사 직종은 300% 가까이 상승했는데 유독 가수 출연료만 10.9%의 증가에 그쳤다는 것을 감안해 볼 때 이들이 얼마나 형편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사들이 가수들만 천대하라는 법을 만든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나훈아를 비롯한 극히 일부 음악인들은 TV 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할 땐 수 십 만원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개런티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아주 드문, 특수한 경우이며 속된 말로 방송사에 아쉬운 것이 없는 이들이고 그래서 방송사에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이들이 음악인으로서의 존경과 부와 명성을 얻은 것은 결코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음악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철학, 부단한 노력 등 인고의 과정이 있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사모 회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그동안 한 가지 예시로서 설명을 구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텔레비전이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지난 60년대 후반부터 한국의 지상파 방송사들과 가수들 사이의 권력관계 아니 역학관계는 방송사들이 지닌 무소불위의 문화권력 앞에 무릎을 꿇고 스스로 굴종을 서약한 시녀가 되다시피 하였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가수들은 손쉽게 자신과 자신의 노래를 전국에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붙잡기 위해 방송사들의 시청률 경쟁의 도구로 전락했다.
음악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퀴즈, 토크쇼, 저열한 운동회 같은 온갖 오락 프로그램에 가수들은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방송사의 노예 아닌 노예를 자처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북새통 끝에 이들이 손에 쥔 것이 무엇이었나 !
 거품같이 사라지고 말 덧없는 인기 한줌이 아니었던가 !
 가수들이 방송사로부터 푸대접을 받게 된 것은 스스로를 천대받아 마땅한 싸구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음악 그 자체로 진지하게 승부하려 하지 않고 브라운관에 얼굴을 팔아 어설픈 인기를 얻고자한 죄의 대가요 업보인 것이다.
 
자고로 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만드는 법이다.
“보호받을 가치가 없는 정조는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50년대의 유명한 判決,
 “권리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유명한 法諺(법언)이 생각나는 이유는 왜일까 !

음악산업의 종주국인 미국의 ABC나 CBS, NBC 같은 지상파 방송사의 프로그램에서 우리처럼 매주 가수들이 현란하게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아예 없는 것은 그쪽의 가수들이 스스로를 싸구려로 만들고자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모든 가치부재의 현상들을 청산하는 방법은 대단히 어렵겠지만 한국에 있는 모든 대중 음악인들이 단결하여 방송사에 대한 거지근성에서 벗어나는 일대 혁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대 방송사로부터 음악이 완전히 독립할 때, 바로 그 순간이 한국 대중음악과 음악인 모두가 스스로 대접받을 수 있는 권리와 명예를 획득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동안 공연시마다 나훈아님께서 말씀하신 한 마디 한 마디가 이 아침 더욱더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노래를 못한다는 겸손, 다른 동료 가수들을 끊임없이 칭찬하는 배려, 그리고 내면의 세계에 충실하는 삶의 자세 등 그의 음악적 사상과 행보만이 아니라 그의 노래 속에는 지나온 삶의 질곡을 아우르는 그 무언가가 내재되어 있어 보인다
 여느 대중가요인들과 같이 평범한 행보를 보이지 못하는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도 크게 보면 그의 인생관이요 생활관이요 음악관일지 모른다
 평범한 잣대로서 한 인간을 재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오래 전에 위에서 지적한 모순과 비리 등 모든 것을 체험하고 간파한 위대한 음악인이요 선각자로서 자리매김한 사람이다.
 그러한 음악적 사상의 기반이 축적되어 있었기에 우리의 노래를 아리랑이라고 하자는 혁명적인 사고가 생겼던 것이고 끝없는 작품 활동으로 대한민국 가요사를 새로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최근 같이 활동했던 몇몇 동료가수들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품위 없는 허잡스러운 말로 그를 貶下(폄하)하는 말을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인간 나훈아는 그 모든 것을 이해하는 가치체계를 넘어선 사람임을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는 진정한 음악인이기 때문이며 이미 인생 전체를 줄달음치는 삶의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최근 그의 노래 가사 한 줄 한 줄에서 그것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단순한 맹목적 칭송의 차원이 아니라 그동안 음악인으로서의 그의 행적과 업적을 아우르는 위대함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나의 확신에 찬 시각임을 주장하고 싶다.
 마치 패배자들끼리의 동지의식을 강조하면서 시기와 자기변명을 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을뿐더러 흉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싶다.

나훈아,
 오늘도 그의 고뇌는 계속된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처연하면서도 기품이 있다, 인생과 사랑에 대한 깊은 고뇌와 고독이 노래 전반에 진하게 묻어 나온다, 그러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사로잡고 편안하게 기댈 수 있게 한다.
어쩌면 우리들은 그의 고뇌와 노래 속에 우리들의 거친 욕망과 다듬어지지 않은 이상을 덧칠하면서 내면의 만족을 끝없이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사모인들은 우리의 노래에 대한 그의 사랑과 열정, 그리고 그 속에 감추어진 그의 고뇌를 짝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번떡이는 야성의 눈동자로 세상을 응시하는 그의 咆哮(포효)를 우리 모두 영원히 지켜보도록하자
그의 음악적 고뇌, 인간적 고뇌를 우리 나사모는 영원히 함께 해야 할 것이다.
 

2006. 9. 22.

나사모 고문 김삿갓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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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성님의 댓글

이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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