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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꼰대상사 없는 삶… 답은 돈!” 2021년의 자본론[이슈&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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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빈용 21-01-02 20:47 27회 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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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소득, 생존의 뉴 노멀이 되다] ② “돈이 돈을 낳게 하자”20대 청년 배윤기(왼쪽)씨와 이주형씨가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한 건물 계단에 서 있다. 두 사람은 고려대 가치투자 동아리 KUVIC의 전·현직 회장이다. 사진은 주식차트를 다중 촬영했다. 윤성호 기자
김모(32·여)씨는 20대 중반에 취업한 뒤 욜로(YOLO)족이 됐다. ‘한 번뿐인 인생 즐기자’는 마음으로 1년에 4~5차례씩 해외여행을 갔다. 적을 때는 80만원, 많을 때는 400만원을 여행에 썼다. 매달 옷값으로 20만~30만원을 지출했고 머리도 자주 바꾸고 다듬었다. 미용실에서 ‘그만 와도 된다’고 할 정도였다. 그는 “입사 후 3년간 적금 만기를 채운 적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30대에 들어서면서 김씨는 파이어족(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경제적 자립을 통해 빠른 시기에 은퇴하려는 사람들)이 됐다. 최대한 빨리 돈을 모아 ‘돈이 돈을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한 뒤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 은퇴하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절약하고 부업을 한다. 무엇보다 돈 버는 법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왜 삶의 방향을 180도 전환했을까.
김씨가 욜로족에서 파이어족으로 변한 건 3년 전인 29세 때였다. 사정이 생겨 부모에게서 독립해야 했는데 돈이 한푼도 없었다. “갑자기 집을 나오게 돼 집을 구하는데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돈이 없으면 안 좋은 환경에서 살아야 하니까요.”
돈을 모으고 싶었지만 당장 뭘 해야 할지 몰랐던 김씨는 재테크 책과 유튜브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1~2년 정도 보고 듣다가 파이어족 영상을 봤어요.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지금 즐기고 사는 게 다가 아니라 빨리 독립해 자유를 얻어서 살 수 있겠구나’ 하니까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김씨가 과거 욜로족을 택한 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서였다. 업무량이 많아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일하고 있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입사했을 때 월급이 너무 적으니까 미래를 생각하지 못했죠. ‘이거 갖고 뭐해’라는 생각이 드니까 지금 당장 좋은 것, 즐거운 것만 찾아서 집착하듯 소비했어요.”
어쩔 수 없이 시작한 투자 공부에서 그는 희망을 봤다. “복리라든지, 배당이라든지 개념을 알게 됐어요. 조금씩 투자하면 내가 (월급으로) 모을 수 있는 것보다 (자산을) 더 모을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한 시민이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 경제·경영 코너에 진열된 책을 바라보고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2020년 종합 베스트셀러 10권 가운데 경제·경영과 자기계발 분야 서적은 5권으로 절반을 차지했다. 윤성호 기자
김씨는 ‘경제적 자유’를 희망하는 2030세대 중 한 사람이다. 요즘 2030 가운데는 안정적인 직장에서 차곡차곡 월급을 모아나가던 기성세대의 전형적 경로를 거부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돈을 버는 일을 터부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빚을 내 투자하거나 직장을 일찍 그만두고 전업투자를 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배경에는 유동성 증가와 초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는 금융시장 환경이 있다. 더욱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일과 직장에 대한 가치관 변화다. 과도한 노동과 불합리한 조직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이들로 하여금 직장에서의 해방을 꿈꾸게 한다. 생존을 위한 노동에서 탈피하는 것,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삶을 영위할 최소한의 돈이 필요하다. 2030이 경제적 자유를 추구하는 이유다.
정모(27)씨는 현재 다니는 공기업의 조직 문화에 환멸을 느껴 파이어족이 되기로 결심했다. 남들은 ‘신의 직장’이라고 부러워하지만 그는 하루라도 빨리 직장을 관두고 싶다. 수직적인 조직 문화와 잦은 술자리가 너무 싫어서다. “처음에는 공기업 다녀서 정말 좋았죠. 그런데 업무 외적인 일들이 훨씬 많았어요.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는데도 직장 상사들은 회식을 멈추지 않습니다. 술잔을 돌려 마시고 건배사도 매번 하게 하고요. 주말에도 부르면 술자리에 나가야 했습니다.”
정씨는 시간이 지나 자신이 상사의 위치가 됐을 때도 별로 행복할 것 같지 않다고 했다. “40대 후반, 50대가 돼도 승진에 얽매이면서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나이 들어서도 상사를 접대해야 하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습니다. 저는 한 달에 200만~300만원만 들어와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습니다. 월 700만~800만원 받겠다고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금융권 직장인이던 서모(30)씨는 2019년 7월 퇴사한 뒤 전업투자자가 됐다. 자산소득 대비 노동소득의 가치가 갈수록 하락하고 있어 조금이라도 젊을 때 투자를 시작해야 미래의 리스크가 줄어든다고 판단했다. 그의 퇴사 결정에는 직장에서의 고충이 한몫했다. 그는 “전업투자를 하니 불필요한 상사·동료·후임 관계나 사내 정치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의미 없는 업무를 안 해도 돼요. 주식 투자가 직장 생활보다 쉽게 느껴져요”라고 말했다.
고려대학교 가치투자 동아리 KUVIC 소속 이주형(왼쪽)씨와 배윤기씨가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한 건물 로비에 앉아 주식 정보를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윤성호 기자
고려대학교 가치투자 동아리 KUVIC의 회장을 맡았던 배윤기(26)씨는 급등하는 부동산 가격을 보면서 ‘자본가’가 돼 경제적 자유를 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은퇴할 때 평균 연봉이 1억원이라고 하더라도 출퇴근이 편한 집을 사려면 15억원은 넘을 거 아니에요. 허리띠 졸라매 30년을 모아야 집 한 채 사는데 그걸 경제적 자유라고 보긴 힘들죠. 결국 자본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는 주식 투자를 선택한 뒤 복리의 마법을 체감했다고 했다.
돈에 대한 2030세대의 선망은 단순히 막대한 자본을 모아 편안한 삶을 누리는 데 있지 않다. 이들은 자신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데 더 큰 방점을 찍고 있다. 욜로족에서 파이어족으로 변신한 김씨는 일이 너무 많을 때는 사무실에서 자고 일어나 다시 일했다고 했다. “좁은 사무실에 박혀서 계속 일하다보면 ‘아, 내가 내 시간 팔아서 돈으로 바꾸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제적 자유는 내 시간을 돈에 팔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공기업 직원 정씨도 “대학 시절만 해도 제가 요리하는 걸 좋아했는데 요즘은 일하고 오면 그냥 눕게 되더라고요. 회사, 집, 회사, 집 이렇게만 사니까 저 자신을 잃는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듭니다”라고 말했다.
재테크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 ‘김씨호랑TV’를 운영하는 김모(36)씨는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권력욕, 명예욕이 촌스럽게 여겨지는 시대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2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졸업할 때 종잣돈 1000만원을 마련했다. 이를 주식, 부동산 등에 투자해 27세에 1억원, 36세에 20억원으로 불렸다. 김씨는 “직장에서의 승진이 더는 선망의 대상이 아닌 거죠. 왜? 저렇게 높은 데 올라가서 사는 모습이 속된 말로 후지니까요”라며 “회사 나오면 아무것도 아닌데 내 삶을 주도적으로 즐기도록 도와주는 게 바로 ‘자본’이라 생각하기 시작한 거죠”라고 말했다.
2030세대는 경제적 자유를 위해 주식 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풍부한 유동성과 초저금리 국면이 이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게 했다. 일부 청년은 주식 투자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손해라고 생각한다.
금융권에서 일하고 있는 엄모(29)씨는 지난 8월부터 마이너스통장을 만들고 6000만원을 인출해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현재 평가수익은 약 1000만원. 그는 “집값이나 주식 같은 자산 가격이 너무 급상승해 제가 버는 돈은 초라하게 느껴져요. 이젠 직장에서의 커리어에 힘쓰기보다 시류를 타고 자산을 불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했다.
2030세대는 빚을 내 투자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시드머니가 커야 유의미한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여겨서다. 전업투자자 서씨는 자본금 6억5000만원 중 3억5000만원이 빚이다. 그는 “본인 실력이 있다면 무조건 빚을 내야 돼요. 20, 30대에는 시드머니를 모아봐야 많이 못 모으잖아요”라고 말했다.
서씨가 빚투의 위험을 모르는 건 아니다. 지난 3월 코스피가 급락했을 때는 3억원이던 총 자산이 1억원 초반대까지 떨어진 적이 있다. 빚이 1억5000만원이므로 사실상 자신의 돈은 다 날리고 빚만 남은 상황이었다. 서씨는 단기 계약직 일자리를 구해 손해를 메우면서 투자를 계속해 수익률을 끌어올렸다. 그는 “(빚투는) 위험하죠. 잘못되면 죽는 시장이니까요”라면서도 “20, 30대에 몇 천만원 잃어봐야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투자를 했어요”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박모(30)씨는 약 1억2000만원을 신용대출로 받아 옵션·해외선물 등에 투자하다 약 5000만원을 잃었다. 그는 “5000만원이 없다고 인생이 바뀌진 않아요. 수업료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2020년 12월 24일 발간한 ‘2020년 하반기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20, 30대 청년층의 가계대출이 여타 연령층에 비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층의 가계대출은 2020년 3분기 말 409조3000억원으로 2019년 같은 기간에 비해 8.5% 늘어 전체 가계대출 증가율(7%)을 웃돌았다. 한국은행은 청년층 가계대출 증가 원인으로 전월세 자금 대출 증가, 30대의 주택매입 수요 확대, 주식투자자금 수요 증가를 원인으로 꼽았다.
다만 일확천금을 노리는 게 아니라 평생 투자를 준비하는 청년들도 늘고 있다. 전업투자자인 서씨는 주식 스터디 2개, 주식 독서모임 1개에 가입해 주식 투자를 공부하고 정보를 교환한다.
배윤기씨는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고려대 가치투자 동아리 KUVIC에 최근 지원자가 많아져 경쟁률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KUVIC은 저평가된 주식 발굴과 투자 방법을 공부한다. 과거에는 경쟁률이 2대 1 수준이었는데 최근 4~5대 1로 늘었다. 인기가 높아지면서 회원을 기수당 15명에서 22명으로 늘렸다.
파이어족 사이에서는 우량 배당주 중심의 투자도 각광받고 있다. 1, 4, 7, 11월 혹은 3, 6, 9, 12월 등 분기 혹은 반기별 배당을 하는 회사들이 있는데, 배당을 많이 주는 회사 주식으로 매월 배당금이 들어올 수 있도록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이다. 우량주에 투자하면서도 추가로 돈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돈이 돈을 만드는 시스템 구축이다.
김씨는 미국 주식에 투자하면서 매달 배당금을 받고 있다. 그는 “한 달에 커피 2~3잔 정도의 현금이 나오도록 하고 있어요. 그게 쌓이면 제 월급을 추월할 날도 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라고 했다. 김씨는 배당주 투자를 하면서 돈 쓰기가 싫어졌다고 했다. “주식을 사면 저를 위한 배당금이 또 나오는데, 다른 데 쓰면 그냥 끝이잖아요.” 1억원을 대출 받아 배당주 위주로 투자하는 정씨도 “배당을 받으면 일단 은행 금리보다는 많이 받게 된다”고 말했다.
한 시민이 지난해 12월 3일 남산에서 강북 지역을 바라보는 모습. 연합뉴스
경제적으로 자유로우면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영위하려면 의식주가 바탕이 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부동산은 2030세대에게 일종의 ‘끝판왕’이다. 아무리 월급을 모으고 부수입을 만들어도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을 소유하느냐 못 하느냐는 ‘생존이냐 실패냐(pass or fail)’ 게임이 됐다. 자금 여력이 있는 2030은 ‘영끌’을 해서라도 부동산을 구매하고 있다.
A씨(33)는 최근 여자친구와 돈을 모아 집을 샀다. 당장 결혼할 계획이 없지만 여자친구 명의로 집을 계약했다. 공동명의로 하면 주택자금 대출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전세 세입자가 있는 집을 기다려 사기에는 매물이나 시간이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주변 직장 동료들, 특히 기성세대들에겐 결혼 전에 여자친구 이름으로 집을 사는 A씨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돈을 뜯기면 어쩌냐’ ‘이해 안 가는 애들’이라는 말을 들었다. A씨는 “여자친구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지금 아파트 가격 오름세가 너무 가팔라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다만 자신의 부모에게는 공동명의라고 거짓말했다. A씨는 “일반 직장인들은 아파트 구매를 엄두도 못 낸다. 가만히 있으면 바로 하층민이 될 듯해서 ‘저렇게 안 돼야지’를 먼저 생각한 것 같다. 그나마 모아둔 돈이 있어서 도전이라도 했다”고 말했다.
서울에 직장을 둔 김모(30·여)씨는 최근 경기도 한 지역의 아파트에 갭투자를 고려하고 있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에 불안해져 뭐라도 사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갭투자를 ‘찜해둔다’고 표현했다. 김씨는 “집을 사고 싶은데 당장 돈이 없어요. 근데 (돈을 모으는 것보다) 집값이 너무 빨리 오르니까 나중에는 아예 못 사게 될 거라 판단하니까 일단 갭투자로 ‘찜’해두는 거죠”라고 말했다.
이슈&탐사2팀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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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소득, 생존의 뉴 노멀이 되다] ② “돈이 돈을 낳게 하자”20대 청년 배윤기(왼쪽)씨와 이주형씨가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한 건물 계단에 서 있다. 두 사람은 고려대 가치투자 동아리 KUVIC의 전·현직 회장이다. 사진은 주식차트를 다중 촬영했다. 윤성호 기자
김모(32·여)씨는 20대 중반에 취업한 뒤 욜로(YOLO)족이 됐다. ‘한 번뿐인 인생 즐기자’는 마음으로 1년에 4~5차례씩 해외여행을 갔다. 적을 때는 80만원, 많을 때는 400만원을 여행에 썼다. 매달 옷값으로 20만~30만원을 지출했고 머리도 자주 바꾸고 다듬었다. 미용실에서 ‘그만 와도 된다’고 할 정도였다. 그는 “입사 후 3년간 적금 만기를 채운 적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30대에 들어서면서 김씨는 파이어족(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경제적 자립을 통해 빠른 시기에 은퇴하려는 사람들)이 됐다. 최대한 빨리 돈을 모아 ‘돈이 돈을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한 뒤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 은퇴하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절약하고 부업을 한다. 무엇보다 돈 버는 법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왜 삶의 방향을 180도 전환했을까.
김씨가 욜로족에서 파이어족으로 변한 건 3년 전인 29세 때였다. 사정이 생겨 부모에게서 독립해야 했는데 돈이 한푼도 없었다. “갑자기 집을 나오게 돼 집을 구하는데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돈이 없으면 안 좋은 환경에서 살아야 하니까요.”
돈을 모으고 싶었지만 당장 뭘 해야 할지 몰랐던 김씨는 재테크 책과 유튜브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1~2년 정도 보고 듣다가 파이어족 영상을 봤어요.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지금 즐기고 사는 게 다가 아니라 빨리 독립해 자유를 얻어서 살 수 있겠구나’ 하니까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김씨가 과거 욜로족을 택한 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어서였다. 업무량이 많아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일하고 있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입사했을 때 월급이 너무 적으니까 미래를 생각하지 못했죠. ‘이거 갖고 뭐해’라는 생각이 드니까 지금 당장 좋은 것, 즐거운 것만 찾아서 집착하듯 소비했어요.”
어쩔 수 없이 시작한 투자 공부에서 그는 희망을 봤다. “복리라든지, 배당이라든지 개념을 알게 됐어요. 조금씩 투자하면 내가 (월급으로) 모을 수 있는 것보다 (자산을) 더 모을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한 시민이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 경제·경영 코너에 진열된 책을 바라보고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2020년 종합 베스트셀러 10권 가운데 경제·경영과 자기계발 분야 서적은 5권으로 절반을 차지했다. 윤성호 기자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
김씨는 ‘경제적 자유’를 희망하는 2030세대 중 한 사람이다. 요즘 2030 가운데는 안정적인 직장에서 차곡차곡 월급을 모아나가던 기성세대의 전형적 경로를 거부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돈을 버는 일을 터부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빚을 내 투자하거나 직장을 일찍 그만두고 전업투자를 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배경에는 유동성 증가와 초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는 금융시장 환경이 있다. 더욱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일과 직장에 대한 가치관 변화다. 과도한 노동과 불합리한 조직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이들로 하여금 직장에서의 해방을 꿈꾸게 한다. 생존을 위한 노동에서 탈피하는 것,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삶을 영위할 최소한의 돈이 필요하다. 2030이 경제적 자유를 추구하는 이유다.
정모(27)씨는 현재 다니는 공기업의 조직 문화에 환멸을 느껴 파이어족이 되기로 결심했다. 남들은 ‘신의 직장’이라고 부러워하지만 그는 하루라도 빨리 직장을 관두고 싶다. 수직적인 조직 문화와 잦은 술자리가 너무 싫어서다. “처음에는 공기업 다녀서 정말 좋았죠. 그런데 업무 외적인 일들이 훨씬 많았어요.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는데도 직장 상사들은 회식을 멈추지 않습니다. 술잔을 돌려 마시고 건배사도 매번 하게 하고요. 주말에도 부르면 술자리에 나가야 했습니다.”
정씨는 시간이 지나 자신이 상사의 위치가 됐을 때도 별로 행복할 것 같지 않다고 했다. “40대 후반, 50대가 돼도 승진에 얽매이면서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나이 들어서도 상사를 접대해야 하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습니다. 저는 한 달에 200만~300만원만 들어와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습니다. 월 700만~800만원 받겠다고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금융권 직장인이던 서모(30)씨는 2019년 7월 퇴사한 뒤 전업투자자가 됐다. 자산소득 대비 노동소득의 가치가 갈수록 하락하고 있어 조금이라도 젊을 때 투자를 시작해야 미래의 리스크가 줄어든다고 판단했다. 그의 퇴사 결정에는 직장에서의 고충이 한몫했다. 그는 “전업투자를 하니 불필요한 상사·동료·후임 관계나 사내 정치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의미 없는 업무를 안 해도 돼요. 주식 투자가 직장 생활보다 쉽게 느껴져요”라고 말했다.
고려대학교 가치투자 동아리 KUVIC 소속 이주형(왼쪽)씨와 배윤기씨가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한 건물 로비에 앉아 주식 정보를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윤성호 기자
고려대학교 가치투자 동아리 KUVIC의 회장을 맡았던 배윤기(26)씨는 급등하는 부동산 가격을 보면서 ‘자본가’가 돼 경제적 자유를 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은퇴할 때 평균 연봉이 1억원이라고 하더라도 출퇴근이 편한 집을 사려면 15억원은 넘을 거 아니에요. 허리띠 졸라매 30년을 모아야 집 한 채 사는데 그걸 경제적 자유라고 보긴 힘들죠. 결국 자본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는 주식 투자를 선택한 뒤 복리의 마법을 체감했다고 했다.
돈에 대한 2030세대의 선망은 단순히 막대한 자본을 모아 편안한 삶을 누리는 데 있지 않다. 이들은 자신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데 더 큰 방점을 찍고 있다. 욜로족에서 파이어족으로 변신한 김씨는 일이 너무 많을 때는 사무실에서 자고 일어나 다시 일했다고 했다. “좁은 사무실에 박혀서 계속 일하다보면 ‘아, 내가 내 시간 팔아서 돈으로 바꾸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제적 자유는 내 시간을 돈에 팔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공기업 직원 정씨도 “대학 시절만 해도 제가 요리하는 걸 좋아했는데 요즘은 일하고 오면 그냥 눕게 되더라고요. 회사, 집, 회사, 집 이렇게만 사니까 저 자신을 잃는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듭니다”라고 말했다.
재테크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 ‘김씨호랑TV’를 운영하는 김모(36)씨는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권력욕, 명예욕이 촌스럽게 여겨지는 시대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2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졸업할 때 종잣돈 1000만원을 마련했다. 이를 주식, 부동산 등에 투자해 27세에 1억원, 36세에 20억원으로 불렸다. 김씨는 “직장에서의 승진이 더는 선망의 대상이 아닌 거죠. 왜? 저렇게 높은 데 올라가서 사는 모습이 속된 말로 후지니까요”라며 “회사 나오면 아무것도 아닌데 내 삶을 주도적으로 즐기도록 도와주는 게 바로 ‘자본’이라 생각하기 시작한 거죠”라고 말했다.
“빚이 돈을 벌어올 것이다”
2030세대는 경제적 자유를 위해 주식 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풍부한 유동성과 초저금리 국면이 이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게 했다. 일부 청년은 주식 투자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손해라고 생각한다.
금융권에서 일하고 있는 엄모(29)씨는 지난 8월부터 마이너스통장을 만들고 6000만원을 인출해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현재 평가수익은 약 1000만원. 그는 “집값이나 주식 같은 자산 가격이 너무 급상승해 제가 버는 돈은 초라하게 느껴져요. 이젠 직장에서의 커리어에 힘쓰기보다 시류를 타고 자산을 불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했다.
2030세대는 빚을 내 투자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시드머니가 커야 유의미한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여겨서다. 전업투자자 서씨는 자본금 6억5000만원 중 3억5000만원이 빚이다. 그는 “본인 실력이 있다면 무조건 빚을 내야 돼요. 20, 30대에는 시드머니를 모아봐야 많이 못 모으잖아요”라고 말했다.
서씨가 빚투의 위험을 모르는 건 아니다. 지난 3월 코스피가 급락했을 때는 3억원이던 총 자산이 1억원 초반대까지 떨어진 적이 있다. 빚이 1억5000만원이므로 사실상 자신의 돈은 다 날리고 빚만 남은 상황이었다. 서씨는 단기 계약직 일자리를 구해 손해를 메우면서 투자를 계속해 수익률을 끌어올렸다. 그는 “(빚투는) 위험하죠. 잘못되면 죽는 시장이니까요”라면서도 “20, 30대에 몇 천만원 잃어봐야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투자를 했어요”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박모(30)씨는 약 1억2000만원을 신용대출로 받아 옵션·해외선물 등에 투자하다 약 5000만원을 잃었다. 그는 “5000만원이 없다고 인생이 바뀌진 않아요. 수업료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2020년 12월 24일 발간한 ‘2020년 하반기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20, 30대 청년층의 가계대출이 여타 연령층에 비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층의 가계대출은 2020년 3분기 말 409조3000억원으로 2019년 같은 기간에 비해 8.5% 늘어 전체 가계대출 증가율(7%)을 웃돌았다. 한국은행은 청년층 가계대출 증가 원인으로 전월세 자금 대출 증가, 30대의 주택매입 수요 확대, 주식투자자금 수요 증가를 원인으로 꼽았다.
다만 일확천금을 노리는 게 아니라 평생 투자를 준비하는 청년들도 늘고 있다. 전업투자자인 서씨는 주식 스터디 2개, 주식 독서모임 1개에 가입해 주식 투자를 공부하고 정보를 교환한다.
배윤기씨는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고려대 가치투자 동아리 KUVIC에 최근 지원자가 많아져 경쟁률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KUVIC은 저평가된 주식 발굴과 투자 방법을 공부한다. 과거에는 경쟁률이 2대 1 수준이었는데 최근 4~5대 1로 늘었다. 인기가 높아지면서 회원을 기수당 15명에서 22명으로 늘렸다.
파이어족 사이에서는 우량 배당주 중심의 투자도 각광받고 있다. 1, 4, 7, 11월 혹은 3, 6, 9, 12월 등 분기 혹은 반기별 배당을 하는 회사들이 있는데, 배당을 많이 주는 회사 주식으로 매월 배당금이 들어올 수 있도록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이다. 우량주에 투자하면서도 추가로 돈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돈이 돈을 만드는 시스템 구축이다.
김씨는 미국 주식에 투자하면서 매달 배당금을 받고 있다. 그는 “한 달에 커피 2~3잔 정도의 현금이 나오도록 하고 있어요. 그게 쌓이면 제 월급을 추월할 날도 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라고 했다. 김씨는 배당주 투자를 하면서 돈 쓰기가 싫어졌다고 했다. “주식을 사면 저를 위한 배당금이 또 나오는데, 다른 데 쓰면 그냥 끝이잖아요.” 1억원을 대출 받아 배당주 위주로 투자하는 정씨도 “배당을 받으면 일단 은행 금리보다는 많이 받게 된다”고 말했다.
한 시민이 지난해 12월 3일 남산에서 강북 지역을 바라보는 모습. 연합뉴스
투자의 끝은 부동산
경제적으로 자유로우면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영위하려면 의식주가 바탕이 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부동산은 2030세대에게 일종의 ‘끝판왕’이다. 아무리 월급을 모으고 부수입을 만들어도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을 소유하느냐 못 하느냐는 ‘생존이냐 실패냐(pass or fail)’ 게임이 됐다. 자금 여력이 있는 2030은 ‘영끌’을 해서라도 부동산을 구매하고 있다.
A씨(33)는 최근 여자친구와 돈을 모아 집을 샀다. 당장 결혼할 계획이 없지만 여자친구 명의로 집을 계약했다. 공동명의로 하면 주택자금 대출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전세 세입자가 있는 집을 기다려 사기에는 매물이나 시간이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주변 직장 동료들, 특히 기성세대들에겐 결혼 전에 여자친구 이름으로 집을 사는 A씨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돈을 뜯기면 어쩌냐’ ‘이해 안 가는 애들’이라는 말을 들었다. A씨는 “여자친구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지금 아파트 가격 오름세가 너무 가팔라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다만 자신의 부모에게는 공동명의라고 거짓말했다. A씨는 “일반 직장인들은 아파트 구매를 엄두도 못 낸다. 가만히 있으면 바로 하층민이 될 듯해서 ‘저렇게 안 돼야지’를 먼저 생각한 것 같다. 그나마 모아둔 돈이 있어서 도전이라도 했다”고 말했다.
서울에 직장을 둔 김모(30·여)씨는 최근 경기도 한 지역의 아파트에 갭투자를 고려하고 있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에 불안해져 뭐라도 사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갭투자를 ‘찜해둔다’고 표현했다. 김씨는 “집을 사고 싶은데 당장 돈이 없어요. 근데 (돈을 모으는 것보다) 집값이 너무 빨리 오르니까 나중에는 아예 못 사게 될 거라 판단하니까 일단 갭투자로 ‘찜’해두는 거죠”라고 말했다.
이슈&탐사2팀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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