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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창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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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사모
작성일17-08-04 10:33 조회483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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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창에 대하여


 


 


 




  타 가수의 창법을 모창 하는 것이 바람직하냐 아니냐는 오래전부터 있어온 논란이고, 각기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모창은 듣는 이로 하여금 흥미와 호기심과 그리고 재미를 가져다준다. 이로 인하여 수요와 공급이 끊이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모창은 장려되고,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은 좀 신중히 생각해볼 문제다. 만약 아마추어가 좋아하는 가수를 모창 하여 자기만족을 얻고, 좌중을 즐겁게 하는 정도의 차원이라면 별로 문제가 될 곳 같지는 않다. 그러나 소위 프로라고 하는 사람의 문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모창가수가 많다는 것은 원가수의 인기와 재능을 나타내는 하나의 증표일 수 있겠지만 과거 남인수, 배호의 사례에서 경험한 것처럼 모창의 최대 피해자는 가요음원의 구매자이고 사용자인 대중이다. 그리고 2차 피해자는 원가수다. 과거 작고한 가수의 향수를 달래주는 순기능으로 모창에 관대했던 시절, 모창가수의 음원이 버젓이 원가수의 이름으로 둔갑하여 원가수의 음원과 뒤섞여 음반으로 출시되는 엄청난 혼란을 겪었던 것을 기억한다.수 십 년 전에 발생한 일이지만 이때 교란된 원가수, 모창가수의 음원이 아직까지 정리되지 못하고 고착된 것이 부지기수다. 이것은 선의의 피해 따위가 아닌 가요사의 진실을 훼손하는 심각한 부작용이다. 가짜음반사건은 특히 남인수, 배호의 경우에 많았다. 이것은 남인수, 배호의 향수를 음반판매로 이용하여 재미를 보고자 했던 음반사의 장난이었지만 모창가수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음원은 영원히 남는 것이기에 그 가수의 魂이라 할 수 있다. 음반에 원가수의 이름을 버젓이 걸어놓고 모창가수의 음원을 수록하는 것은 원가수의 명예와 이미지 실추는 말할 것도 없고, 가수의 魂마저 가짜로 만든다는데 심각성이 크다. 그러나 여기까지도 폐해의 전부가 아니라는데 심각성은 계속된다.


 



  나훈아의 경우를 보자! 나훈아의 경우 생존하여 있는 관계로 가짜음반 사건은 없었다. 그러나 생존여부를 떠나 무엇보다도 그의 독창적인 정점을 흉내 낼 수 없다는데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프로'라는 사람들이 나훈아와 혼돈을 일으키려는 의도로, 교묘하게 지은 羅氏성의 이름으로(그중 '노성아'도 있었지만)나훈아 모창가수로 가수활동을 하고 있다. 전문가적 시각에서 보면, 그들의 수준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나훈아 절정기 시절의 음색에 전혀 접근하지 못했다. 겨우 코미디 수준을 넘어선 정도다. 이것은 그들이 나훈아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육십 이후 음색의 열화가 진행되는 나훈아의 외형만을 흉내 내어 분별없는 비음의 남발과 비브라토의 고음에서 '꺽-꺽-걱'거리는 천박함만을 연출한다. 외형적 제스처 또한 본질의 통찰과 분석 없이 원숭이처럼 흉내 냄으로써 나훈아를 희화화하고 있다. 이런 것으로 인하여 일반 사람들은 그들의 엉터리 음색과 천박한 행태를 나훈아의 전형으로 인식한다.


  현실이 이러한데 어찌 나훈아의 피해가 남인수, 배호만 못하랴. 어쩌면 모창의 최대 피해자는 남인수, 배호보다 상대적으로 모창가수의 저변이 넓은 나훈아다.


(참고로 전문가적 시각에서 말하면, 나훈아의 최근음색에는 오히려 가수 강진이 근접해있다. 羅氏성을 가진 모창가수들은 차라리 강진을 모창하라! 그러면 잘한다 소리는 들을 것이다!)


 



  모창을 하나의 장르로 보아야 하는지는 생각해볼 문제지만 순기능이 있고 엄연히 저변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성찰이나 혁신, 가요발전의 기여도(度)없이 무분별한 원가수의 흉내와 이미지 재연에 안주한다면 모창은 철학부재에서 오는 부정성의 부각으로, 순기능도 잃어버리고 부초처럼 언제까지나 가요계의 변방을 떠다니는 비천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어쩌란 말이냐!', '말하는 결론이 무엇이냐?' 라고 혹자는 필자에게 반문할 것이다. 그 반문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모창은 전혀 부정적이지 않고 하나의 장르로 당당히 존립할 수 있다!'다.


 



  단지 필자가 주장하는 것은 모창이 하나의 장르로서 당당히 인정받고 존립하기 위해서는 원 가수의 본질은 물론이고 그 이면을 조명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평면도, 정면도, 측면도만으로 3차원의 조감도는 완성 된다. 하지만 조감도만으로는 단면과 그 이면을 알 수 없다. 따라서 그 보이지 않는 이면과 단면도를 그려내는 것. 이것이 모창가수의 몫이고 모창가수가 담당해야 하는 과제다. 이러한 측면에서 월연스님의 경우가 좋은 본보기가 된다. 스님은 배호의 보이지 않는 단면을 그려냄으로서 어느 누구도 스님을 모창이라 하지 않는다. 천혜의 재능이요 배호와 닮은 창법의 소유자로 평가한다.(젊은 날의 '김광남선생' 같은 분도 포함될 수 있겠다.)작고 또는 유고한 가수의 숨은 그림을 찾아내고, 보이지 않는 부분을 그려낼 때, 비로소 모창은 가치를 가지며 하나의 장르로 완성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모창의 영역은 가요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고, 인물난을 겪고 있는 가요계에 인물의 다양화라는 엄청난 풍요를 가져다줄 것이다. 자연스레 모창가수의 입지도 넓어져 원가수 못지 않게 대우 받는 계기도 될 것이다. 이것은 축복이다. 이것은 가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승자가 되는 길이기도 하다.


 


  다소 무거운 주제를 언급해보았습니다. 글 성격상 어떤 사람에게는 마음의 상처가 될 수도 있는 민감한 사항이지만, 한번은 집고 넘어가야할 문제라는 생각에서 언급해 보았습니다. 끝.


 




 



글쓴이/산딸기

댓글목록

마노님의 댓글

마노

그렇습니다.
남인수, 배호-
이 두 분의 노래가 방송을 탈 때마다 조바심이 나는 이유가?
모창 가수가 버젓하게 두 분의 이름으로 소개될땐 울화통이...

마노님의 댓글

마노

그렇습니다.
남인수, 배호-
이 두 분의 노래가 방송을 탈 때마다 조바심이 나는 이유가?
모창 가수가 버젓하게 두 분의 이름으로 소개될땐 울화통이...